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사와 히데유키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응씨배 4강에 조훈현 등과 함께 올랐을 때는 "조훈현이 최강이다. 우승은 그의 몫이다. 아마도 나와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을까 싶다."며 위트 있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,[* 안타깝게도 이후 녜웨이핑을 만나서 2번 연속 반집패를 했다.] 이창호 九단이 제자의 제자 그러니까 손제자라는 이유로 1994년 후지쓰배에서 자신을 이긴 이후 친히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. "이기기 위한 바둑에 앞서 자기 표현에 충실한 바둑을 둬야 한다."하고 덕담을 써준 이 편지가 이창호에게도 고맙고 인상 깊었는지 자서전 <부득탐승>에 전문을 실어 놓기도 했다.[* 편지 내용은 당시 이창호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념하는 월간바둑 6월호에도 실렸다.] * 1999년 11월에 일본기원을 탈퇴하고 독자적인 면장을 발급하다가 같은 해 12월에 일본기원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았다. 그 후 2003년에 독자적인 면장 발급을 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하고 일본기원에 복귀했다.[[http://archive.nihonkiin.or.jp/news/syuko.htm|#]][[https://imidas.jp/hotkeyperson/detail/P-00-306-09-05-H050.html|#]] * 다섯째 아들 [[https://www.nihonkiin.or.jp/player/htm/ki000209.htm|후지사와 카즈나리]]도 프로 바둑 기사다. 바둑 기사로 활동하는 한편 신주쿠 어린이 바둑 교실과 프로 기사 지망생들을 위한 천풍도장(天豊道場)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. * 손녀 [[후지사와 리나]]는 2010년 4월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(11세 6개월)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,[* [[조치훈]] 九단이 보유하고 있었던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 기록(11세 9개월)을 경신했다. 그 후 2019년에 [[나카무라 스미레]]가 10세 0개월에 입단하며 후지사와 리나의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 기록을 경신했다.[[http://badukbiz.com/View.aspx?No=2988197|#]]] 2010년대 후반에는 일본 여류 바둑계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여류 기사로 성장했다.[* 참고로 후지사와 리나의 기풍은 두터움을 중시하는 호쾌하고 화려한 기풍의 할아버지와 달리 실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.[[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4003674#home|#]]][* 여담으로 일본기원 공식 유튜브에서 후지사와 리나와 진행한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kJoKgfQYjYc|인터뷰]]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대국한 적은 없다고 한다. 다만 할아버지의 소개로 [[조훈현]]과 4점 [[접바둑]]을 둔 적은 있다고 한다.[[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21445367#home|#]]] [[분류:바둑 기사/일본]][[분류:1925년 출생]][[분류:2009년 사망]][[분류:요코하마시 출신 인물]][[분류:자수포장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